2025년 12월 31일, 문현동 언덕 위로 드론을 띄웠다. 국제금융센터 뒤로 산자락이 보인다. 그 아래 파란 덮개가 덮인 땅과 타워크레인이 있다.
몇 해 전까지 이곳에 마을이 있었다. 사람들은 문현 안동네 돌산마을이라고 불렀다. 무덤마을이라고도 했다.
이 언덕에는 누가 살았을까.
무덤 사이에 지은 집
이 언덕은 원래 공동묘지였다. 1960~70년대, 갈 곳 없던 사람들이 무덤 사이에 움막을 지었다. 전쟁과 가난에 밀려온 사람들이었다. 헐리고 다시 짓기를 되풀이하며 마을이 되었다.
집은 250채 남짓으로 늘었다. 무덤 80여 기는 그대로 남았다. 어떤 집은 마당에 무덤을 두고 살았다.
무덤을 돌본 이웃들
처음에는 무덤이 무서웠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자 달라졌다. 성묘 오는 사람이 끊긴 무덤을 주민들이 대신 벌초했다. 할머니들은 무덤 곁이 오히려 따뜻하다고 했다. “산 사람이 무섭지, 죽은 사람이 뭐가 무섭노.”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 찾는 이 없는 무덤을 돌봤다. 산 사람과 떠난 사람이 한 언덕에서 이웃으로 지냈다.
담장에 핀 그림
2008년 봄, 회색 담장에 그림이 그려졌다. 주민과 학생, 자원봉사자가 밑그림부터 색칠까지 함께했다. 벽화는 40여 점이었다. 그해 가을, 이 벽화로 대한민국 공공디자인대상 최우수상을 받았다.
사람들은 이곳을 벽화마을이라고도 불렀다. 주말이면 사진기를 든 사람들이 골목을 올랐다.
흩어진 이웃들
벽화도 낡은 집을 고치지는 못했다. 비가 새는 지붕, 석면 슬레이트, 좁은 골목이 남았다. 주거환경개선사업이 시작되었다. 2022년, 주민들이 떠나고 마을은 헐렸다.
50년을 함께 산 이웃들은 여러 곳으로 흩어졌다.

다시 켜질 불
지금 그 자리에 새 집이 올라가고 있다. 2027년 9월에 입주할 예정이다. 옛 주민들이 먼저 들어올 수 있는 자리도 마련되었다.
숫자로 남기는 기록
50여 년공동묘지 언덕에 사람들이 집을 짓고 산 시간 · 1960~70년대부터 2022년까지
숫자로 보기
| 숫자 | 뜻 |
|---|---|
| 50여 년 | 1960~70년대부터 2022년까지 |
| 250가구 남짓 | 언덕에 모여 살던 집 |
| 80여 기 | 마을 안에 남아 있던 무덤 |
| 40여 점 | 2008년 담장 벽화 |
| 2027년 9월 | 새 집 입주 예정 |
편집자/신문수삶에는 아주 힘든 시기도 있다.
나는 그 때 문현 안동네 돌산마을(무덤마을) 꼭대기 공터에 앉아 내려다 본다.
아래로는 사람 사는 지붕이, 곁에는 무덤이 있다.
산 사람과 떠난 사람이 한 언덕을 나눠 쓰는 곳.
그 경계에 앉아 있으면, 지금의 힘듦은 아무것도 아니다.죽음 곁에서도 사람들은 오늘을 살았다.
그 언덕이 나에게도 오늘을 살게 했다.
여러분에게도 그런 언덕이 있습니까? 힘든 날 올라가 앉아 있던 곳, 돌산마을 담장의 그림을 기억하신다면 그 기억을 간직해 두십시오. 우리 동네 방송국이 문을 여는 날, 그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출처
- 부산역사문화대전 — 무덤과 어울려 살아온 할머니 · 2011년 구술 기록
- 부산은 항구다 — [지명유래] 문현동 묘지마을 — 부산남구민속회 『남구의 민속과 문화』(2001) 인용
- 시빅뉴스 — 부산 문현동 공동묘지 위 ‘돌산마을’이 사라진다 · 2017. 6. 23
- 부산광역시 — ‘문현 안동네 벽화’ 공공디자인 최우수
- 바다온 — 문현동 안동네 벽화마을
- 국제신문 — 재개발 되는 문현동 돌산마을…원주민은 어디로? · 2020. 6. 4
- 문현 푸르지오 트레시엘 — 공급 안내(입주 예정 시기·지구주민 우선공급)
이 글은 편집자 신문수의 기억과 위 기록·보도를 바탕으로 DN ART Media가 사실을 확인하고 우리 말로 다시 쓴 기록입니다. 기사 문장과 사진은 옮기지 않았습니다. 이 글의 사진은 모두 DN ART Media가 직접 드론으로 촬영한 것입니다. 숫자는 보도 기준이며, 벽화 수는 40여 점·47점으로 기록이 엇갈려 ‘40여 점’으로 적었습니다.
